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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검도회] 이충무공 대회 관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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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기도검도회 작성일12-05-10 조회2,28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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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무공 대회 유감



필자가 이 대회 첫 참가한 것이 46년이 된다.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 참관하는 대회였다.


그로써 대통령 앞에서 세 번이나 시합한 사람은 전영술 선생과 필자가 되는 셈이다. 전영술 선생은 이승만 대통령 앞에서 세 번 이고 필자는 이승만 대통령 앞에서 2회 바로 이충무공 대회에서 박정희대통령 앞에서 한 번이 되는 것이다. 그때 시합은 천변(川邊) 백사장 같은데서 치루어 졌다.


어린 학생들로 부터 중, 고, 대, 공무원, 일반으로 어울려 팀을 구성하고 싸우는 특수 시합이 이충무공 대회다.


당시 최초의 국가대표 선발전이 있기 1년 전인 1966년도이기 때문에 내 개인의 기량은 꽤 전성기에 머물러 있을 때 이기도하다.


당시 대구·경북 분리 전 일 때 경북 선발전에서 대 선배이자 톱 풀레이어 시절의 윤병일 선생과 자웅을 겨루어 경북대표로 출전한 내력이 있었던 출전이기도 했다.


그때 박정희 대통령이 입석하자 갑자기 순서도 안 된 경북 대표 선수인 필자를 박 대통령이 정면에 보이는 위치에 서게 하고 필자의 상대 선수를 등지게 하여 시합을 하게 하였다. 필자도 경북출신 선수요 박 대통령도 경북 출신이란 점을 고려한 고약하고 치졸한 경기 진행이기도 했다. 참 아부성 경기로 전대미문의 시합을 하게 된 내력도 지금은 이야기 꺼리가 되기도 한다.


그때 필자의 상대가 전북의 손창 후배였다. 손창 선생도 참 고참 중의 한사람이다. 이미 1957년도 중등부로 전영술 선생과 한 팀이 되어 전국체전 참가를 하였으니 그런 서열로 따진다면 현재 몇 손안에 드는 선배 서열에 드는 분이기도하다.


이즈음 해마다 만나면 그때 박대통령 앞의 시합 이야기로 반가움을 더 한다. 금년도 예외 없이 그 이야기를 하면서 반가움을 표했다.


이러한 추억과 기록이 있는 내 개인의 감회는 남다르다. 또한 당시 경북 전무이사 이셨던 남정보 선생(남승희 선생의 부친)은 반드시 시합 전날 이충무공 영전에 우리 선수들 인솔하시고 참배 하면서 기념관 관람을 하고 나오던 일들이 감명 깊게 떠오른다.


누가 지금 시합 와서 이충무공 사당 둘러 참배하고 기념관 관람을 하는 교육적 행보가 있는가?


생각하면 이충무공 충성 기리는 시합 와서 그 같은 교육적 관람 참배 등을 외면하다시피 하는 이즈음 우리 검도인 들의 태도는 얼마나 우리 검도인 들이 반성해야 될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각 시도 인솔 전무나 필자 자신도 반성할 일이기도 하여 마음 언짢다.


그 46년 전 그때 그 시합은 아주 즐거운 여행이 곁들인 대회였다.


이충무공 이란 민족 성웅의 족적을 살 필수 있고 주변 경관 감상하고 즐거운 시합 하고 참 흥겹기까지 한 여행 겸 시합 이었다.


필자는 그때 28세 청년으로 70 중반 노인이 되어 어린 제자 후배들의 격려성 참가를 하게 되는 감회가 해마다 새롭다는 뜻이다.


그 시합도 경기도가 참 많이도 우승 하였건만 그 우승 해 본지 오래인지라 큰 기대를 건 출전 이었건만 금년도 우승은 놓치고 준우승에 머물고 말았다. 필자는 성격상 차라리 초반 탈락을 할 것이지 죽도록 싸워 결승까지 와서 준우승을 한 것이 통분 할 정도로 불쾌 했다.


그 세부적인 이유를 우선 주장 정성윤의 입장을 살핀다. 그는 개인전 우승의 기록이 현저 하면서 국가대표 자리를 쟁취하지 못한 불운한(?) 선수이나 뛰어난 기량의 선수다.


더욱이 금년 세계대회 출전하는 경기도 소속 김민규, 박병훈, 유재혁선수가 포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당히 경기대표로 선발된 선수다. 그러한가 하면 광명의 노련한 조국현, 김영호, 남양주의 작년도 전국 체전 시 국가대표 이강호등 굵직한 선수들을 누르고 경기도 단체우승의 견인차 역할을 한 김경식, 세계대회 2위인 박병훈을 누른바 있는 남양주의 김정진 등을 제치고 경기대표로 발탁 되었다면 가히 그 기량을 의심 하지 않아도 되는 검증된 고급 선수이다. 그리고 여자의 이윤영은 백전노장의 여성선수로 국가대표 금년도 세계대회 선수이기도하다. 중등부의 김다운 선수도 작년 2학년의 조건으로 전국 소년 체전우승 주역의 최고 선수이다. 더욱이 중, 고 선수들은 전승을 해주었다. 상대팀 기량 뛰어난 선수제압에 실패한 점은 물론, 그 보다 더 중요한 교훈은 평생을 선수로 지도자로 지내오면서 필자가 가장 싫어하는 선수는 방정맞은 선수나 지도자다. 늘 그렇게 말한다. 1.운 2.노력 3.기량이라고. 그런데 우리는 참 방정맞은 사건이 있었다. 시합에 대표로 선발되고 시합 임박해 출전을 포기한 초등부선수의 교체가 결정적 패인이다.


앞으로 지도자는 크게 참고하기 바란다. 그 선수가 빈자리에 차선의선수가 출전하여 전패 했다. 물론 그 전패는 우리 선수의 실력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초등부 선수의 상대팀 선수들은 너무 뛰어났다. 초등부 하면 지도자로써 국내에서는 대구의 김장호 사범을 능가할 사람 없는 줄로 안다. 그러나 왕년의 경기도 박영준, 이형민 같은 지도자는 김장호 사범을 가볍게 누른 초등부 지도자로써 뛰어난 지도자다. 박영준은 퇴계원 초등에서 약10회 우승, 광명 동 초등에서 약 10회 우승시키고 이형민 역시 퇴계원 초등을 약 10회 이상 우승시킨 지도자들이다. 그런데 그 초등부가 4패를 한 것이다. 그것도 시합 임박하여 선발 선수가 출전 포기하는 바람에 초래된 불운이었다.


방정 맞다함은 이렇다.


필자는 세상에 제일 불효한 자식은 아비를 치는 자식보다 부모보다 먼저 요절하는 자식이다. 라고 늘 그렇게 말해왔다. 기량이 모자라도 선수로 출전하는 선수가 필요하지 시합 당일 다친다든지 다른 사고로 출전치 못하는 운명(?)의 선수가 가장 얄밉다는 말이다. 그래서 일 운(1.運) 이 노력(2.勞力) 삼 기량(3技倆)이란 말이다.


그러나 그런 사고도 딛고 일어나는 선수가 훌륭한 선수이다.


예를 들어 정병구나 황호문, 김경남, 유규홍 선수들의 행적을 보자.


어느 해던가 전국 체전이 며칠 남지 않은 시기에 정병구 선수가 일주일인가 앞두고 다리 종기 수술을 했다. 난감해서 나무랐더니 책임지겠다는 말에 안도는 했지만 불안 했다. 그러나 전승함으로써 불안을 말짱하게 씻어 주었다.


유규홍 선수도 마찬가지로 쪼개진 죽도 꼬챙이에 팔이 찔려 시합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병원에 가서 응급 치료를 한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그 상처를 딛고 우승의 견인차 역할을 다했다. 참 대단한 대형 선수다.


그런 선수출신이 경기도 살림을 사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황호문 선수와 김경남 선수는 그 큰 기량을 가지고 아주 필자를 낭패시킨 적이 있다. 참 뛰어난 기량의 선수가 황호문 선수이다.


1983년도 대학연맹전에 김경남 황호문 정병구 나란히1.2.3.등을 한 기록이 있듯이 이 세 사람이 한 팀이 되면 거의 우승 이었다.


선봉 정병구 중견 김경남 주장 황호문의 순으로 역할을 다해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시합 앞두고 주장 황호문이 행방이 묘연 해졌다. 하는 수 없이 후보 김기선이 주장으로 출전해서 결국 결승전 주장전서 세종대 권은택을 호쾌하게 2;0으로 이겨 우승을 안겨준 사실이다. 경희대 최초의 우승 순간이다. 그처럼 2진 선수가 나가도 우승 할 수 있었던 필자의 선수 기량들 이었다. 그 황호문을 울면서 붙잡았지만 기어코 그는 떠나가서 낭인처럼 되어버렸다. 내 잘못이라고 여길 뿐이다. 그러나 내일 시합을 두고 연습중 발로 유리를 잘못 밟아 주장 고동수 사범이 출전을 못하게 되었을 때 주로 우리 선수들의 차량 수송만 도왔던 정훈덕 사범이 대신 출전하여 자신은 다 이겼으나 다른 선수들로 인해 준우승까지 한 사례도 있다.


참 잘 따라준 선수들이었고 비록 2진에 머물러 있었지만 전국규모 대회에서는 1진 선수 못지않게 잘 싸워 주었다. 내 일 시합을 앞두고 오늘 행방이 묘연 해진 김경남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끌어내어 세계적 선수로 만들었건만 이렇게 인연이 끊기고 말았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김경남을 잊지 못한다. 죽기 전에 다시 함께 할 시간을 기대한다. 죄는 뉘우치면 된다, 그 기량이 너무 아깝다. 그리고 국내 내 노라 하는 선수들 치고 시합 전 사고로 출전 못한 선수 거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전영술 선생, 김춘경 선생, 고규철 선생들 다년간 선수 생활한 분들도 단 한 번도 사고로 시합 못 하는 일 보지 못했다. 필자 역시 그런 일이 없었음을 자랑한다. 꼭 한 번 속 이 몹시 불편하여 출전이 어려웠지만 식사를 김치를 물에 씻어가며 식사했던 그때도 시합을 책임 있게 다 했다.


정병구, 유규홍 부상 중 임에도 우승 역할 다 했듯이.


시합은 질수도 이길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말 하는 것이 아니고 전패를 할 선수를 데리고 가게 된 사실을 말 하는 것이다.


이때에 그 선수가 출전권을 따고도 가지 못한 온당한 이유를 캐고 다시는 이런 선수를 발탁치 말아야 될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겠다. 누군가가 책임 질 일이기 때문이다. 대 경기도의 명예가 걸린 문제인데 이런 낭패가 어디 있는가?


대신 출전한 어린 나이의 진 선수는 엄청난 충격을 입었을 터이다. 이 선수는 위로해 주어야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왕년의 박영준, 이형민의 찬란했던 기록은 어디 갔는가? 하는 문제이다. 한국서 가장 많은 팀을 가진 경기도의 지도자들이 무슨 말로 변명할 것인지가 궁금하다. 중,고,대, 여자부 일반부는 지고 이기고간에 관계없이 그만하면 잘 뽑았는데 유독 초등학교 4패는 선수기량 차이가 엄청 나게 나더란 말이다. 광명의 과거 박영준 사범의 제자들을 보라.


조국현, 김신일, 김동진, 김영호, 박상석, 김준현등은 전국대회 우승선수로 광명중고로 진학하여 광명 중고를 빛내주었고 각자 각 대학 실업팀서 큰 역할들 해주었다. 특히 이즈음 인기 절정인 개그콘서트의 김준현은 초등시절 SBS 대회서 초등부 우승 까지 한 선수였다. 그들 모두를 인솔하고 일본 원정을 간적 있었다. 시합 중에 김동진 선수가 머리에 신열이 나고 괴로워하기로 출전을 포기하라 했더니 어린 나이에도 벌떡 일어서 자기 순서에 시합하여 이기고 돌아오던 씩씩한 기억이 있다. 이형민 또한 남양주의 황우진과 김정진을 길러낸 기록이 있다. 이렇듯 출중한 지도자였던 박영준도 멀리 사라지고 나니 초등부 실력이 이 모양이 되어서 급기야 경기도를 망치는 기록을 남기게 된 것 같아 너무 슬퍼다.


그래도 2등한 수고를 말하지 않을 수는 없기도 하다.


출전 선수 여러분!


모두 수고 했고 앞으로 이런 시합 전 출전 무산되는 방정맞은 사고 없기를 기원하면서 내년을 기약하자.



경기도 검도회장 김재일

경기도검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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