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검도회] 한류(韓流)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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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기도검도회 작성일11-07-18 조회1,698회본문
한류(韓流)를 생각한다
국조 단군 이래 반만년간의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우리는 수없는 외세의 무력에 시달리고 파괴되는 고난한 길을 걸어왔다.
유구한 어둠의 역사를 뚫고 최근 들어 가히 열풍이라 할 만한 한류가 세계를 뒤덮고 있는 현상을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것은 총칼의 무력(武力)으로 시달려 온 민족이 이를 극복하고 짧은 시간 안에 문화(文化)로 세계를 제패하려 들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표현으로 세계를 지향하는 의지 표현을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국 속의 세계”라는 대담하고 적극적인 표현이 필요하다. 일찍이 징기스칸이 세계를 향해 달려 나갈 때 세계를 움켜쥐겠다는 기백이었지 세계 속에 담기겠다는 의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한(漢)나라 이래 수. 당. 원. 청. 중국은 물론 근세에 들어 우리가 깔보고 있던 섬나라 일본에 침략되고 서구열강의 틈새에서 남북으로 허리가 잘린 채 기약 없는 통일론만 공염불처럼 뇌이고 있던 기성세대들이었다.
버르장머리 없고 나약한 줄만 알았던 어린 아이들이 한류(韓流)라는 이름으로 겁도 없이 질주하며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는 중에도 정치권은 아직도 19세기의 잠에서 깨어나고 있지 못하다. 어린세대들에게 참으로 부끄럽고 국가적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떠한 호기(好機)도 국가적인 단결된 역량이 동원되지 못하면 참담한 결과를 가져 온다는 사실은 역사를 통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무(武)를 문(文)으로 승화시켜 한류(韓流)의 첫발을 내딛은 것이 체육무도 종목의 태권도다. 무려 190 개국이 넘는 회원국을 가지며 국기(태극기)에 대해 경례를 시키고 우리말로 구령을 하는 종목이 태권도 말고 다른 스포츠종목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것이야 말로 “세계 속의 한국”이 아니라 “한국 속의 세계”라 할 만하지 않는가? 이러한 호기를 잘 관리하여 생명력이 오래 가야 하기위해서는 그 시발(始發)을 잘 살피고 그 성공의 원인을 잘 평가해야할 것이다. 우선 태권도를 놓고 보면 우선 일본식 단급 사용 이라든지 무도란 단어도 이론서 발생한 단어를 여과 없이 사용 한다든지 하는 왜색 탈피도 중요한 숙제로 남아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젊은 태권도 인들이 해외로 나가 때로는 불법 체류도 감수하면서 태권도 보급에 나섰다. 그들이야 말로 한류의 선발대이며 오늘의 태권도가 있게 만든 전사들인 셈이다.
심하게 설명하면 미주 등에서는 유도하던 사람들조차 급조 된 태권도 인이 되어 올림픽에 진입하고 태권도 종주국의 일원으로 합류하였다.
여기에는 김운용 이란 걸출한 인물이 국제무대서 활약 해 준 덕분 이라는 사실도 알아야한다. 단순히 태권도 그 자체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해방 후 검도가 가장 우세한 입장에서 출발 한 내력을 안다면 이해가 갈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 것이라고 그렇게도 싫어했던 검도 유도종목에 대해 보급의 길을 열어준 분이 검도의 서정학 선생이고 그가 바로 이승만 대통령 경호 실장이자 검도 대가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유도는 유도대학을 설립하고 태권도는 뒤늦게나마 외국 진출을 먼저 시도 했다는데서 결정적 성공을 거둔 것이다. 바로 일류(日流)가 한국에 진출 하면서 일본화 되어 간 것이 오늘날 검도 유도 합기도 거합도. 등이다. 그러함에도 태권도는 신품종으로 개량 되어 가라데와 공존 하고 있다. 이러한 반면교사를 통해 한류의 생명력을 염려해야한다.
병인양요 이후 외규장각 문서를 강탈 해가고 부르짓드 바르도라는 어줍잖은 여배우는 보신탕을 먹는 한국인 이라고 우습게보던 프랑스인들이 아닌가.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 피기를 기대한다는 말로 우리를 무시하던 영국인들이 아니었나.
후진국의 수모와, 동방의 소국이라 얕보던 그들에게 우리의 어린 세대들이 무력(武力)보다 더한 기세의 문력(文力)으로 아름답게 평화적으로 세계를 공략하는 문화의 우월성. 이는 총칼보다 더 강한 아름다운 우리의 힘인 것이다. 이 힘의 원천은 국조단군의 “홍익인간, 이화세계”라는 예사롭지 않은 역사적 선견지명에서 발원한 것이며 거대한 국가적 포부가 대기만성 하는 진행 과정 중에 있다고 본다.
이와 같이 우리 힘의 원천은 하루아침에 이루어 진 것이 아니고 저 멀리 주몽이 이어받고 광개토왕 김유신 계백 을지문덕 양만춘 연개소문 고선지 이정기에게, 그리고 왕건 서희 윤관 강감찬 최영에게, 김종서 이순신이 김좌진. 홍범도 안중근에게 이어 오며 칼에 찔리고 베인 무(武)의 아픔을 문(文)으로 승화시킨 저력의 발로이며 다시 세계를 향해 문화로 되돌려주는 역사의 대반전인 것이다.
우리의 젊은 문화 전사들이 세계무대서 땀 흘리고 국위선양을 하고 있는데 아직도 포퓰리즘의 늪에 빠져 19세기 수준의 정치력이 개화되지 않는다면 모처럼 응집된 이 한류의 기세는 아름다운 끝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게 된다.
이런 한류의 힘을 ‘자기 논에 물대기’식으로 이용을 하려고만 들었지 과연 어느 누가 정치권에서 이 거대한 세계 공략의 문화전쟁에 군수물자 하나 보낸 사람 있었는가. 1차대전 이후 세계를 놀라게 하면서 세계무대에 등장한 기세를 업고 일류(日流-자포니즘(japonism))가 한때 동양인의 막연한 선망이던 때가 있었다. 그 뿌리가 지금도 살아있는 일본 유도 검도 합기도 등 무도문화이다.
한류도 그 발생과 형성과정을 보면 미국이나 서양문화의 모방에서 출발한 것임은 부정 할 수 없다. 그러나 발생과 형성과정이야 어찌됐던 온전히 우리 것으로 만들고 국가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진정한 한류로 정착할 것이며 국가적인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적극적인 발굴과 지원이 없이는 한류도 사상누각으로 흔들릴 날이 온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