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검도회] 오! 위대한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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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기도검도회 작성일12-05-29 조회2,817회본문
오! 위대한 탄생
이번 제41회 전국 소년체전은 기록 면에서 몇 가지 두드러진 기록이 있다.
기록이라 해서 경기 기록을 말 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의미에서 정리하는 기록이다.
소년 체전 우승은 작년에 이미 타 지역에서도 우승 한바 있지만 체육관이 아닌 검도장 검도문화 속의 우승이란 뜻이다.
한국 검도 계는 처참 하고도 불행하게 검도장 제대로 못 갖춘 지방 검도 회 가 많다. 그런 사정을 기준 한다면 우리 경기도 검도 수련원은 연수원의 성격과는 좀 달리 검도 숙명적 모습인 검도 전문을 위한 내용 전개의 장인 수련장으로써 그 용도를 다 하고 있다. 그 결과를 가늠하는 대회장으로써 최고의 경기인 작년전국 체전과 금년 소년 체전을 이곳에서 개최하는 기념비적 행사임을 기뻐하고 자랑하는 바이다. 물론 이 기쁨과 자랑은 우리 경기 전 검도인 들의 몫이고 그래야 한다. 22년 만에 경기도에서 치러진 이대회가 완벽성은 갖추는 역사적 대회였음을 알아야한다. 체육관에서 맨발로 들락날락 하는 검도문화, 화장실에서 도복 착용을 해야 하는 검도문화, 심판들의 덮 버선발로 경기장 안 밖을 출입하는 검도문화, 이곳저곳에서 끽연하는 검도문화, 이런 수준 낮은 우리검도 문화 속에서 검도수련을 하고 세계대회를 한다면 우리 검도는 유도 태권도등 타 종목 무도 종목은 물론 다른 체육 종목의 뒷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다행히 경기 검도에서는 타 무도 종목 타 체육 종목에서도 시도 하지 않았던 “경 검 문예” “경 검 춘추” 연 2회에 걸쳐 출간하고 또 다시 검도역사 사진첩 등을 출간하면서 문화면에서 최초의 면모를 괴사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 효시에 불과 하지만 그 기념비적 기록은 현재 까지는 전무하다 아울러 각종 검도 논문집 검도서(劍道書) 역사 등의 전시도 경기 검도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 기록을 자랑 하는 것이다. 다시 몇 년 후에 경기도에서 전국체전 및 소년체전 같은 대형 행사를 치룰 것인가 몹시 섭섭 하기도 하다.
이 문화검도, 검도문화 속의 성공 검도를 일구어 낸 우리들의 합심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그 합심의 내용에는 유규홍 전무이사 및 홍성수 총무이사 이항수 경기이사 장한규 부회장의 고단한 헌신과 지방 시,군 회장단들의 적극적 관심과 협조가 큰 힘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심판 단에서 활약한 경기도의 김영학 교수 그리고 용인대학 및 각 급 학교 행사 보조 요원들의 철저하고 열성적 도움과 학부형 및 경기 검도인 들의 응원과 시흥시 체육회 및 시흥시 검도회의 협력도 빼 놓을 수 없는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시흥시장님 시흥시 검도회장님과 그 배후에서 열심히 지원 해준 안상홍 전 시흥시검도회장 및 시흥시 검도 회 전무이사의 노고 또 한 뺄 수 없는 높은 수고 였음을 감사히 여긴다. 또한 적지 않은 배후의 큰 힘은 역시 경기도 김문수 지사님과 체육회 이태영 사무처장님의 직 간접 배려였고 더 큰 후원이자 사기 진작의 결정적 도움주신 분들임을 잘 알고 감사 할 뿐이다. 물론 그 보답은 우승 이었다.
뭐니 뭐니 해도 이행사의 핵심 목표는 우승이다. 경기 기록을 잠시 살펴보자. 결론부터 먼저 말한다면 작년 팀보다 수준과 께임 내용이 졸렬했음을 부정 할 수 없었다.
그 원인은 최고의 지도자가 그 지도 실력을 제대로 전개 하지 못했다고 본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통계적으로 용장(勇將) 밑에 약졸(弱卒) 없는 법이다. 유규홍 전무가 과도한 업무와 중고 두 팀을 관리하는 탓으로 그의 특기인 기술 전달이 미흡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다. 우선 첫 께임에 선봉 이위의 졸렬하기 짝이 없는 진행은 차라리 슬펐다. 어떻게 저런 선수를 데리고 나왔는가? 하는 의구심이 났고 중학생 시합에서 늘 보이는 움직이지 않아서 풀리지 않는 경우를 가만히 보고 있는 코칭 스탭 들의 모습이 늘 안타까웠다. 도망 다니고 단 한 번 도 공격을 못하는 선수를 어떻게 데려 나왔는가 말이다. 물론 연습 때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박영준 이형민 큰 선수 길러본 경험 없이 어떻게 그 많은 우승을 시킬 수 있었던가? 그들은 많은 것 보지 않고 오직 우승하는 전문가의 지도를 그대로 본 딴것이라고 답하고 싶다. 도성기 사범 역시 오직 우승하는 전문가의 지도를 그대로 충실히 따른 것이었다. 인천 체전 출신들의 지도경력은 물론 자신들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체전의 고된 훈련을 경험 사람들이다. 최성운의서석중고 정훈덕 안양 남초등, 고동수의 부천시청 방선호의 경성고, 도성기의 광명중 고, 김국환 청주농고. 김재곤 민천기의 성동고, 김제휴의 김포고 부천시청, 박상범의 퇴계원 중, 이어 경희대 출신의 박영준의 광명동초 퇴계원 초. 정병구의 남양주 유규홍의 퇴계원 중 고. 이형민의 퇴계원 초등 다 한 검맥(劍脈)의 제자들로서 필자 전성시기 훈련 방식을 연계해가면서 우승의 경력을 쌓아갔다고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전제로 약 일주일전 후 연습현장을 보고 절대우승을 낙관 할 수 없음을 발견했다. 유규홍 전무는 전본의 아니게 아래 사범에게 맡겨둔 것 까지는 좋은데 시합 일주일 쯤 둔 시점에 훈련 내용을 물으니 기초훈련 후에 시합 훈련한다고 하기에 앗질 한 순간을 느낀 것이다. 마무리단계에서 시합 훈련 외에 더할 것 무엇이 있는가? 기초 훈련이라니 기가 막혀 아무간섭 할 때가 아니라서 그냥 귀추만 볼 도리 밖에 없었다.
불안하기도하려니와 작년처럼 45년 전에 첫 세계대회 갈 때 합숙 했던 남양주 소재 흥국사로 작년처럼 새벽에 달려가 불공드리고 왔다. 아니나 다를까 첫 께임 부터 졸전이 나타났다. 겨우 이기고 나서도 불안한 께임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4전 4승한 광명 팀 선수의 기여와 적절한 순간 끝내주는 시합을 마무리 해준 주장의 훌륭한 께임이 우승을 안겨 주었다. 4전 4승의 우승 길을 연 선수도 훌륭하지만 주장 전 에서 끝내주는 시합을 한 주장은 타 감독 들이 군침 삼키며 바라보는 좋은 재목감이기도 하다. 이 경기를 외면하지 않고 애착과 애정으로 참여하고 협조 해주신 우리경기검도인 및 모든 분들의 하머니요 오케스트라 같은 우승 작품임을 잘 안다.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 거듭 드리고 부득이 참여치 못한 분들은 다음 기회 함께 하기를 바란다.
우승보다 더 한 우리만이 가진 자산 경기검도 수련원에서 연 2회에 걸쳐 전국대회를 문화검도로 상승시키고 “경검 문예” “경검 춘추” 2집이나 발간하고 한국최초 검도역사 사진집을 출간하고 학론지 논문집 전시까지 시도하고 곁들여 본 행사 궁극 목적인 우승까지 쟁취한 이 기록을 어찌 위대한 탄생이라 아니하랴 이 위대한 탄생 영원 하라
경기도 검도회장 김재일